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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이 192명을 데리고 ‘독 가스실’로 들어간 남자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이유

1988년 영국 bbc의 시사 풍자 프로그램인 베츠라이프에서 사회자가 방청객이 있는 한 노인을 가리키며 혹시 저분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무려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이 일제히 일어나서는 웃으며 그를 쳐다봤고

고마움이 가득 담긴 사람들의 눈길을 본 노인은 잠시 후 자리에 앉은 채로 눈물을 글썽거렸는데요.

대체 그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던 나치 독일 아래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까지 바친 끝에 천이백 명의 유대인을 구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죠.

이런 그의 일화를 주제로 한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나오며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영국에서도 무려 669명의 생명을 구하며 영국의 쉰들러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니콜라스 윈턴입니다.

니콜라스 윈턴은 1909년 잉글랜드의 런던에서 독일 유택의 영국인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니콜라스 윈턴 경은 1920년대 중반에 은행원으로 일했으며 1938년에는 평범한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휴가를 받고 스위스에 스키를 타러 가던 도중 그의 친구 마틴의 연락을 받고 체코로 가게 되죠.

당시 체코는 마치 독일에 점령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지내던 상황이었습니다.

우연치 않게 수용소의 참혹한 상황을 보게 된 윈턴경은 그때부터 죄 없이 희생당하는 유대인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죠.

당시 그의 조국인 영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아이들을 양자와 양녀로 받아서 그들의 목숨을 나치로부터 구하려는 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체코에 있는 유대인들에게까지는 그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때문에 윈턴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체코로 건너가 그곳에 유대인 아이들을 영국으로 입양 보내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윈턴 경은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체코에서 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나치로부터 숱한 위협을 받았지만 윈턴는 절대 구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나치 장교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영국에서 법적 절차를 밟아 수용소에 갇혀 있던 총 669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무사히 영국으로 입양 보내는 데 성공하게 되죠.

얼마 후 윈턴 경은 마지막으로 250여 명의 아이들을 기차에 태워 보내려 했지만 하필 그때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바람에 아이들을 태운 기차는 출발하지 못한 채 멈추게 되었고 이후 그 아이들은 모두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조사해본 결과 안타깝게도 이 아이들 중 겨우 두 명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확인되었죠.

윈턴은 1988년이 될 때까지 무려 50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선행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숨겼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마지막으로 구하려 했던 250명의 아이들을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50년이 지난 어느 날 윈턴의 집 다락방에서 그의 아내가 우연히 노트 하나를 발견하게 되죠.

놀랍게도 그곳에는 윈턴이 체코에서 목숨을 구했던 모든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죄책감에 시달리던 윈턴은 그 자료들을 없애려고 했지만 아내가 그를 설득한 끝에 노트를 기자들에게 전해주게 되었고 마침내 윈턴의 의로운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죠.

이후 bbc의 tv 프로그램인 데츠라이프에서 윈턴을 초빙했고 한쪽에서 윈턴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회자가 그가 해왔던 일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는 윈턴의 아내에게 전달받은 노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윈턴이 구한 아이들의 목록을 공개했는데 그 중에 베라 디아만트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으며 그녀가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다고 말해줬죠.

그녀는 바로 윈턴의 옆 자리에 앉아 있었던 중년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렇게 베라와 윈턴은 오십 년이라는 세월 만에 감격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고 윈터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죠.

그런데 그날의 깜짝 손님은 베라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사회자가 방청객들을 향해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니콜라스 윈턴 씨 덕분에 생명을 구한 사람이 있다면 일어나 주시겠어요 라고 말하자

윈턴의 주변에 앉아 있던 30여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났죠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된 아이들은 그렇게 윈턴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고 윈턴은 한동안 감격의 눈물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50년 전 그가 구했던 669명의 아이들은 이제는 각자 가족을 일궈서 어느새 6천 명으로 늘어나 있었죠.

윈턴은 1983년에는 영국에서 대형제국 훈장 5등급을 2003년에는 기사 자기를 받았고

2002년에는 자신의 도움을 받아 수용소에서 탈출한 당시의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 5천 명과 만나는 행사를 가졌으며 이천십사 년 체코에서는 정부 최고 훈장인 백사자 국가 훈장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니콜라스 윈턴 경도 유대인이니 자신의 동쪽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그 시절 자신의 민족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도 귀찮거나 무섭다는 이유로 그들을 돕지 않았던 유대인이 훨씬 많았고 니콜라스 윈턴 경처럼 본인의 재산까지 써가면서 목숨 걸고 그들을 도와준 사람은 더욱 드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윈턴경은 끝까지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자신은 쉰들러처럼 전쟁 중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기 때문에 쉰들러가 자신보다 훨씬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이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죠.

지금까지 나치로부터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해낸 의인 니콜라스 윈턴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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