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근대 최고의 실종사건이 된 재벌가의 손자” 식인종 섬에 방문한 재벌의 최후가 된 마지막 순간

유명인이 실종된 사건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그것도 재벌의 자식이 사라진 경우는 정말로 드문 경우이죠.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종된 사람이 식인종에 잡아 먹혔다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이클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재벌로 유명한 록펠러 가문의 4대 막내손이였는데요. 록펠러 가문은 근대 이후 최고 갑부 1위에 꼽힐 정도로 잘 사는 집안이었고, 당시 마이클의 아버지는 뉴욕 주지사, 훗날 제랄드 포드 행정부의 부통령이 됩니다.

마이클 록펠러는 어릴 때부터 영재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부잣집 막내 아들스러운 느낌은 없고 돈과 물질 같은 것에 초연한 이상주의자였다고 합니다.

똑똑하기도 하고, 돈도 가진 그는 하버드를 수석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오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었죠.

그는 고고학 발굴에 많은 공부를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하버드 졸업 이후에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험하기도 하고 원시 예술에 완전히 매료되어 살다가 뉴기니로 떠납니다.

뉴기니는 당시에 완전히 알려진 게 없는 미지의 영역인 곳이기 때문에 그는 더욱 기대를 품고 떠났죠.

그는 뉴기니 섬으로 떠날 때 현지 가이드 2 명과 네덜란드인이던 인류학자 르네 바싱과 함께 네덜란드령 남부로 향합니다. 마이클은 그 섬에 가기 위해서 택한 배가 안정적인 배가 아니라 전복이 쉬운 ‘카누’를 선택합니다.

카누가 조금 빠르고 섬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하여서 선택한 것이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고 그는 그 때는 알지 못 했죠.

1961년 11월 17일, 카누는 전복이 됩니다. 현지 가이드였던 2명이 먼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바다를 헤엄쳐 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죠.

기다리던 마이클도 물 위에 있느니 육지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헤엄쳐 갑니다. 같이 동행했던 네덜란드 인류학자는 끝까지 카누에 매달려있던 덕에 구조가 됩니다.

구조가 된 네덜란드 인류학자 르네 바싱은 아직도 마이클을 못 찾았단 얘기에 “분명 그가 육지에 발을 딛는 것을 목격했다.”라고 증언을 합니다. 록펠러 집안에선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난리가 났고, 전세계가 그가 실종 되었다는 얘기만 줄곧 대서특필 합니다.

그 근처 강의 땅을 모조리 파냈다, 라고 표현할 만큼 오랫동안 아주 꼼꼼하게 그를 찾기 위해서 수색작업을 했는데 끝내 그를 발견하진 못 했습니다. 수색팀은 더이상 수색을 포기하고 사인은 익사로 추정하고 끝내버립니다.

그가 실종된 것은 결국 익사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끝이나버렸지만 아무도 그걸 진짜로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갔던 그 지역은 식인종이 살고 있던 곳이며, 1958년 네덜란드 경찰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힌 전적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유독 백인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는데, 그들은 백인을 사악한 마법사로 인식하고 백인을 잡아먹으면 본인들이 마력을 흡수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록펠러 집안에서는 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사립탐정을 고용합니다. 그 지역에 가서 조사를 하던 중 ‘MCR’이라고 작성이 되어진 마이클 록펠러의 옷을 입고 있던 식인종이 발견됩니다.

​그의 유골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해졌지만 그의 어머니에겐 3점의 유골이 전달됐다고 설이 돌았으나, 그들의 가문은 그것을 부정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들이 식인종에 잡아 먹혔단 이야기를 공론화 시키기 싫었던 모양 아닐까요?

아직도 그의 발자취가 끝난 그 지역엔 마이클이 흔적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갔으면 그 부족은 MCR이라고 새겨놓은 라이터를 따로 판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X

오늘의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