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중력은 벗기 힘겨웠고 삶은 줄곧 신산했다. 김밥부터 홍합탕, 다방, 소라탕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던 박 할머니.
김밥 장사를해서 모은 돈을 전부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의 사연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1929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박 할머니는 아버지와 같이 살며 아파도 약을 구하지못해 된자을 바르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서러운 가난은 악착을 남겼는데요. 열 살 무렵부터 박 할머니는 온갖 장사를 했습니다.
경성역(현 서울역)에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늘어선 승객들에게 김밥을 팔았고 불법 장사를 막으려고 순찰을 도는 일본 순사들을 피해 외투 안에 엉성하게 만 김밥을 숨긴 채 “아줌마 김밥 사세요”라고 속삭이며 팔았습니다.
곡절 끝에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해 평생을 혼자 지내왔는데요.
이후 박 할머니는 갈곳이 없는 지적 장애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친자식처럼 돌봐주며 남을 위해 배려하고 헌신하며 살아왔는데요.
박할머니가 돌본 지적 장애인은 모두 11명으로 이제는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 할머니의 나누는 삶은 아흔을 넘긴 지금도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9월 LG복지재단으로부터 받은 의인상 상금 5000만원도 이곳저곳에 모두 기부했는데요.
지난 5월에는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 일부인 2000만원 까지 기부하고 시설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내 손에 남는 것 없이 그저 나누는 일에 그는 별다른 이유나 거창한 철학을 붙이지 않는다. “나는 돈을 두고는 못 살아” “(첫 기부 때) 말도 못하게 좋았지” “나눠주면 좋아, 기분이 좋아” 라는 할머니의 소감이였는데요.
이런 할머니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난 1월에는 청와대에서 열리는 기부, 나눔 초청행사에 초대되었습니다.
함께 초청된 수 많은 사람들과 대통령 및 고위 인사들은 할머니를 정중히 모시며 존경의 예를 표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영부인의 손을 잡고 눈물을 보였는데요. “방금 내밀어 주시는 손을 잡으니 갑자기 어린 시절 제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의 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귀한 분들 앞에서 울고 말았다. 죄송하다.” 라며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말했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모두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할머니를 보고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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