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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원숭이와 함께 전시되었던 남자가 맞이하게 된 최후

과거 서구 유럽들의 침략과 지배가 있던 시절 그들은 자신들의 인종적 문화적 우월을 뽐내기위해 박람회를 열었는데요.

그러한 이유로 박람회장 구성에 인류학자가 꼭 참여해 식민지에서 ‘배송해온 인간’의 전시를 관장했습니다. ‘낙후된 야만인’의 전시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었는데요.

특히 미국에선 이런 전시가 일상화되었는데, 아프리카 다호메이 부족 100여명을 벌거벗긴 채 전시하거나(1893년 시카고박람회), 상체를 드러낸 사모아 여인들(1894년 샌프란시스코박람회)을 관람객 앞에 누워 있도록 했습니다.

더 잔혹한 것은 개인업자의 전시였습니다. 아프리카 피그미족 청년 오타 벵가는 1903년 미국으로 끌려갔고 이듬해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서 ‘진화가 덜 된 이상한 사람들’ 이라는 부제의 전시관에 전시되었습니다.

진화론과 함께 인종의 우월에 대한 학설이 득세하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인간이 영장류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동물원 측 기획에 따라 24세의 벵가는 일거수 일투족 모두 관람객들의 구경거리가 돼야만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호기심으로 이들을 바라봤고 상냥한 성격의 오타 벵가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1883년 콩고 태생인 오타 벵가는 당시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흑인 노예들을 강제노역으로 내몰고 학살하던 상황에서 미국인 사업가에 팔려 콩고를 벗어났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미국에 온 오타 벵가는 만국박람회가 끝난 후 콩고로 돌아갔다가 재혼한 아내가 죽자 다시 미국행을 선택했는데요.

하지만 오타 벵가는 뉴욕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 다시 팔려갔고, 1906년 벵가는 앵무새 한 마리와 ‘도홍’이라는 이름의 오랑우탄과 함께 뉴욕 브롱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히게 됩니다.

방문객들은 그를 향해 불붙은 시가와 잡동사니들을 던지곤 했습니다. 가을이 되었지만 벵가에겐 따뜻한 옷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옷으로 몸을 가리면 ‘진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 갇힌 오타 벵가는 백인 아이들이 침을 발라 넣은 치즈토막과 비스킷으로 연명했고 벌거벗은 채 대소변을 보는 모습까지 공개해야 했습니다.

1916년 인권위원회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묵인한 미국 정부를 비난하며 구명 운동에 나섰습니다. 당시 동물원 측은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지만 잇따른 비난 여론에 벵가는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오타 벵가는 동물원에서 벗어나 담배 공장에 취업하는 등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동물원 생활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벵가는 수시로 공장 노동자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결국 1916년, 인종차별과 학대 속에 괴로워하던 벵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그의나이는 34세였습니다. 그는 20세기 초,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야만족’을 전시한 서구 사회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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