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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천년 동안 꽁꽁 숨어 살았지만 ‘히말라야’에서 영국 탐사대에 의해 발견된 사람들의 소름돋는 정체

1937년 어느 날 중국의 고고학자이자 북경대 교수였던 제복태와 그의 학생들은 티백과 중국의 접경지대인 히말라야 바얀카라 울라산에서 탐사를 하고 있던 중이였습니다.

제복태 교수와 학생들은 그곳의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근처에 선조들의 무덤이라 알려져 가까이 가기를 꺼리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곳을 찾아나선 제복태 교수와 학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원주민의 말대로 수많은 동굴과 무덤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은 곧바로 동굴로 들어가 조사를 나서게 됩니다.

동굴의 벽에는 원형 투구를 쓴 사람의 형상을 한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고 방사선과 행성 그리고 항성계로 추정이 되는 그림 또한 발견됩니다.

동굴의 벽화 아래에는 묘지에서만 발견이 되는, 흔히 말해 묘혈이라 불리는 구멍들이 있었는데 그 구덩이들을 파본 결과 그들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외소한 몸체에 머리만 비정상적으로 큰 유골들이 매장된 거대한 무덤군을 찾게 되었던 것이죠.

무덤에 묻힌 유골의 신장은 약 120~130cm로 기이하게 큰 두개골을 가지고 있었고 가늘고 취약한 신체를 가진 그들은 물리적인 충격에 매우 약해 보였죠.

그렇게 동굴과 그 속의 무덤들을 조사하던 도중 그 주변에서 여러 고대 유물들 또한 발견됩니다. 그런데 탐사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에 시간을 들여 그들은 탐사를 계속 이어나갔죠.

그때 탐사 인원 중 한 명이 주목할 만한 유물을 발견하게 됐는데 그것은 기이한 문자들이 새겨진 원반형의 금속판이었습니다.

고대 유물이라 하기엔 그 원판의 모습은 너무나도 깔끔하고 기술적으로 정갈한 형태를 띠고 있었고 최초로 원판이 발견된 땅 주변을 계속해서 파본 결과 그 주변에서 총 716개의 원반형 금속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금속판은 30cm의 직경과 1cm의 두께였고 가운데엔 20mm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빛을 비추면 독특한 반사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이상한 문자들 금속판에 가득 새겨져 있었던 것이죠.

이 원형 금속판들은 후에 ‘드로파스톤’이라 불리게 됩니다.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 제복태를 제외한 대부분의 팀원들은 이 무덤의 주인은 단순 고릴라나 영장류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복태 교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영장류의 동물이 이렇게 묻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생각했죠.

얼마 후 탐사를 마친 교수와 팀원들은 그렇게 여러 일들을 뒤로 하고 그곳에서 발견한 유물들과 드로파스톤을 가지고 북경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복태 교수는 여러 유물들 중 특히 원형 금속판인 드로파스톤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금속판에 새겨진 상형 문자들 속에 어떠한 모종의 비밀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렇게 제복대 교수는 길고 긴 세월을 들여 문자 해독 연구에 몰두하게 되지만 끝내 그의 연구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됩니다.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문자해독에 실패했기에 제복태 교수의 탐사는 고대 유물 발견 사례 중 하나가 될 뿐이었고 결국 시간이 흐르며 점점 잊히게 됩니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되고 1958년이 되었습니다.

제복태 교수와 같은 북경대 교수인 춤 움 누이 박사는 어느 날 과거의 연구 자료들을 살펴보다 우연히 제복태 교수의 기록을 발견하게 되고 유물들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아직 북경대에 그 유물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연구에 돌입하게 되죠.

제복태 교수와 마찬가지로 춤 움 누이 박사 또한 드로파스톤의 암호 해독에 깊은 몰두를 하게 되고 놀랍게도 그는 제복태 교수와는 다르게 드로파스톤에 새겨진 상형 문자의 전문을 해독하는 데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상형 문자의 해독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드로파스톤은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의 것이 아닌 외계 행성으로부터 온 외계인들의 것이었죠.

이어서 드로파스톤에 새겨져 있던 문자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물들의 주인인 외계인들은 약 1만 2천 년 전 넓은 우주를 장기간 탐사하고 있던 중 그들의 비행선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로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게 됩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표류를 하게 된 외계행성을 그들은 제3 행성이라 부르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였던 것이죠.

추락 당시에 대부분의 엔지니어 외계인들이 사망을 하게 되었기에 생존한 몇몇 외계인들은 그들이 타고 온 비행선을 고칠 방법을 알아내지 못할뿐더러 지구를 떠날 방법 또한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1만 2천 년 전의 인류와 함께 더불어 사는 길을 택하게 되었고 그 세월 동안의 인간과 외계인 사이에 태어난 후손들 또한 남기게 되었다는 내용이 드로파스톤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춤 움 누이 박사는 이 사실을 곧바로 학계에 보고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중국 공산당의 학자들은 얼토당토 안 한 연구라며 박사를 비웃기 바빴고 언론 발표를 금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박사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주변의 여러 고고학 교수진들과 함께 정부의 집단 소송을 걸어 끝내 중국 정부로부터 인민일보의 연구 논문을 발표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1968년 드디어 중국 여러 신문사에 박사의 논문이 실려 자신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게 되었죠.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드로파스톤에 대한 모든 기사들이 전부 폐기를 당하게 되고 춤 움 누이 박사는 중국 정부로부터 여러 압박을 받게 되었고 결국 중국으로부터 추방되어 평생을 도망자로 살게 됩니다.

1978년, 평소 제복태 교수의 탐사와 춤 움 누이 박사의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영국의 고고학자 칼 로비 에반스는 제복태 교수의 탐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직접 현장에 가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와 학계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그는 결국 자비를 털어 탐사를 가게 되죠.

제복태 교수와 마찬가지로 에반스 박사 팀의 목적지는 히말라야 바얀카라 올라산이었고 그곳은 티백과 중국의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었기에 그들은 먼저 티베트로 떠나게 됩니다.

그들은 티베트에서 머무를 당시 우연히 중국 정부로부터 도망치던 14대 달라이 라마를 만나게 됐는데 실제로 당시 달라이 라마와 에반스 박사가 회동하는 사진이 남아 있죠.

에반스 박사는 자신의 탐사 계획에 대해 달라이라마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뜻밖의 사실을 달라이라마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것은 드로파스톤의 주인인 외계인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달라이라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불시착으로부터 생존했던 몇몇 외계인들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외계인의 후손들이 아직까지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그들은 드조파인이라고 불려진다고 합니다.

달라이라마가 하는 얘기는 드로파스톤에 적혀 있는 내용과 일치했던 것이죠.

또한 달라이라마는 에반스 박사에게 드조파인이 살고 있는 마을의 지도를 그려 건네게 됩니다.

에반스 박사는 지도를 바탕으로 드조파인의 마을을 찾기 위해 먼저 티베트인과 네팔인을 가이드로 삼아 탐사대를 구성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드조파마을을 찾기 위한 탐사대라는 사실을 안 티베트와 네팔 현지인들은 두려워서 가지 못하겠다며 하나같이 모두 거절했고 결국 에반스 박사 일행은 가이드도 없이 탐사를 떠나게 되었죠.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히말라야 산맥은 매우 거친 자연환경의 고산지대였기에 그 험난한 오지를 길도 모르는 외지인들이 탐사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에반스 박사 일행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였는데 그렇게 결국 탐사를 나서게 된 에반스 박사 일행은 무려 10일 동안의 히말라야 산에게서 드조파 마을을 찾으며 머무르게 됩니다.

험난한 과정에서 거친 눈보라로 인해 팀원 중 2명이 실종되었고 그들은 결국 탐사를 포기하고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데다 소중한 팀원을 2명이나 잃었기에 에반스 박사와 그의 일행들은 좌절과 낙담을 한 채 산을 하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들의 키는 120cm 내외였고 손가락은 매우 길고 작았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겁을 먹거나 도망쳐야 했을 테지만 그들은 전혀 악의적인 행태를 띠고 있지 않았고 에반스 박사 팀은 이미 100일 동안의 무리한 탐사로 인해 그들이 누구이든 간에 어떻게든 도움을 청했어야만 했습니다.

노력 끝에 에반스 박사 일행은 그들이 마주한 외소한 인간들로부터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초대받게 됩니다.

마을에 도착해 에반스 박사는 먼저 제사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여러 이야기를 서로 나누던 중 제사장으로부터 마을에 살던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놀랍게도 에반스 박사는 제사장이 드로파스톤에 적혀 있던 기록들과 동일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는데 그렇게 그는 그가 만난 이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외계인의 후손들 즉 드조파인이란 걸 확신하게 되었죠.

에반스 박사 일행은 그곳에서 6개월을 더 머무르게 되었고 그동안에 그들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드조파인의 마을에는 약 120명의 드조파인들이 무리를 지어 단체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현대 중국어가 아닌 고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사용하는 문자는 세계 어디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상형 문자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팀원 중 한 명이 드조파인들의 사진을 찍게 됐는데 그 사진은 아직까지 남아 전해지게 되죠.

충분히 조사를 마친 에반스 박사 팀원들은 그렇게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자신의 탐사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서 드조파에 관한 논문 연구 결과라는 이름으로 학계와 정부에 보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정부는 에반스 박사의 논문을 언론에 공개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드로파스톤과 드조파인에 대한 논문은 또다시 묻히게 되었죠.

불행 중 다행인지 세월이 지나 에반스 교수가 심장마비로 사망을 한 뒤에서야 비로소 그의 논문은 세상에 공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드로파스톤과 드조파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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